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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는 찬밥"…자조감 확산 '심각'

맨스케이브 2009. 9. 29. 08:39

IT는 찬밥"…자조감 확산 '심각'
특별취재팀
"회사 접겠다며 찾아온 CEO가 한달 동안 7명이나 됐습니다. 하소연 들어주고 달래주느라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최근 만난 중견 SW업체 A사장이 털어놓은 말이다. "현재 코스닥에 있는 SW회사들 중 30~40%는 툭 건드리면 넘어갈 겁니다. 기술적으로 디폴트(default) 상태지요." A사장은 전날도 과음한 듯, 얼굴이 까칠했다. SW업계에서 명망있고 인적 교류도 두텁다는 평을 듣는 A사장이다. A사장은 "현재 IT업계는 황폐 그 자체"라고 했다. IT업체들이 목적의식도, 방향감각도 상실한 채 표류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 위기의 IT코리아

IT코리아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휴폐업하는 IT업체들이 속출한다. IT벤처 창업은 갈수록 보기 힘들어졌다. 신생 IT벤처기업은 2005년 7천563개였던 것이 2007년에는 5천945개로 줄었다. 벤처캐피탈회사는 최근 5년 사이 440개에서 240개로 줄었다. 대학의 IT 관련 학과는 비인기학과가 됐다. 한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신입생들이 입학하자마자 공무원시험에 매달린다"고 했다. 그나마 젊고 유능한 IT인력들은 IT에서 '미래'를 못찾고 속속 떠나고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최근 몇 년간 지속돼 오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 속에서도 IT산업은 꿋꿋이 나라의 경제를 지탱한 버팀목 구실을 해냈다.

그러나 지난해 이후 상황이 현저하게 나빠졌다. 분수령은 정권 교체다. 정통부가 해체되면서 그 기능은 방송통신위원회, 지식경제부, 행정안전부, 문화관광부로 4분할됐다. IT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직접적인 여파로 IT 투자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행안부가 추진하는 전자정부 관련사업의 경우 당초 지난해 상반기에 총 1천557억원이 배정됐다. 그러나 6월30일까지 집행된 예산은 516억원에 불과했다. 정부 쪽의 IT프로젝트가 이처럼 '집행중지' 현상을 보이자 민간 프로젝트도 뚝 줄어들었다. 민간 투자가 위축되면 정부라도 나서야 하는데 오히려 정부가 투자 축소에 앞장 선 꼴이다. 한 IT업체 사장은 "일감이 워낙 없어 회사 유지하기 정말 힘들었던 시절"이라고 회상한다.

하반기도 마찬가지였다. 공공 IT프로젝트는 추진기관이 따놓은 예산을 소진해야 하기에 연말에 집행속도가 붙긴 했다. 그러자 이번엔 2009년 정부 IT예산이 줄어든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내년 공공분야 소프트웨어(SW) 사업규모는 2조192억원으로 전년 대비 5.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식경제부의 경우 방송통신 부문 예산은 2008년 1조1천298억원에서 2009년에는 9천565억원으로 15.3% 줄었다. 지경부는 '뉴 IT산업 육성' 의지를 표명했지만 ▲전자정보디바이스 ▲정보통신미디어 ▲SW/컴퓨팅 ▲차세대통신 등 4개 산업원천 분야 2009년 예산은 4천632억원으로 전년대비 14.2% 줄어들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IT분야에 '돈줄'이 마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침체가 찾아오기 이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2000년 35.7%였던 IT투자 증가율은 2007년 10%대로 떨어졌다. IT산업 성장률도 최근 계속 하향곡선을 그린다. 돈이 돌지 않는 산업은 활력을 잃고 침체할 수 밖에 없다.

A사장이 폐업하려는 SW업체 CEO를 한달새 7명이나 만난 것은 이런 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 IT코리아 경쟁력 '급전직하'

지난해 9월16일 영국의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국가별 IT산업 경쟁력 순위는 충격을 안겨줬다. 66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의 순위가 2007년 3위에서 1년만에 8위로 5계단이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한국은 100점 만점에 64.1점을 받았다. 대만과 스웨덴, 덴마크, 캐나다, 호주가 한국을 제치고 상위권으로 올라갔다.



EIU의 국가별 IT산업 경쟁력은 ▲R&D환경 25% ▲IT기간시설(인프라) 20% ▲인적자원 20% ▲IT산업 개발지원 15% ▲전체 비즈니스 환경 10% ▲법률환경 10%의 비중으로 평가한다. 한국은 R&D환경에서 2위, 인적자원에서 5위로 그럭저럭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IT산업 개발지원과 법률환경 분야에선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는 결국 정부 부문의 문제로 한국의 IT경쟁력이 급속히 후퇴했음을 똑똑히 보여준다. 한국은 과거 10여년 동안 국가 IT경쟁력과 관련된 어떤 조사에서도 세계 톱5 아래로 내려가본 적이 없었다. IT강국 코리아는 이렇게 추락하고 있다.

IT산업에서도 그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IT산업 성장기에 투자와 신규 서비스, 조달을 통해 수많은 IT기업에 젖줄을 댔던 KT는 성장정체를 보이고 있다. KT는 지난 2002년 이후 지금껏 '마(魔)의 매출 12조원' 장벽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통신사업자들도 가입자 포화에 따른 내수 정체라는 공통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첨단 기술력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원천특허 경쟁력도 떨어져 있다. 매년 기술료 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 지난 2003년 24억 달러 적자를 본 데 이어 2004년 27억달러, 2005년 29억달러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 대표 IT기업인 삼성전자 역시 매년 해외에 지급하는 특허수지 적자가 오는 2010년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지식경제부가 첨단 IT산업 육성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제시하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보면 매번 선진국에 적잖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시스템반도체, LED,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소재, 로봇 등이 그렇다. 시스템반도체는 휴대폰·가전·자동차 등에 많이 채용되는 핵심부품이다. 3G 휴대폰 제조원가 중 시스템반도체 비중은 40%에 이른다. 그러나 시스템반도체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2007년 한해에만 무역수지 71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의 IT산업이 원천기술 분야에선 매우 허약한 구조임을 보여준다.

한 반도체 장비업체 대표는 "우리나라는 IT 강국으로 자부해 왔지만, 실상 인프라강국이다. IT 전반적으로 경쟁력이 우수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그런데도 정부가 IT를 홀대하다간 IT 선진국과 격차가 더 벌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IT는 찬밥"…자조감 확산 '심각'

"IT산업 키워봐야 일자리만 줄어든다."

지난해 9월9일 이명박 대통령이 TV로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 말이다. IT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 말에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대통령이 국민들이 보는 TV에서 'IT 쓸모없다'고 낙인 찍은 셈이기 때문이다. IT강국 코리아를 만든 자부심, IMF체제의 위기를 구했다는 긍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참담한 좌절감을 맛봤다. 이런 소리 듣고도 IT사업을 해야 하나"고 말하는 기업인도 있었다.

그 뒤로도 이 말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지난해 12월8일 경영정보학회·정보과학회·정보처리학회 등 국내 3대 IT 관련 학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교수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정부가 IT를 일자리나 줄이는 주범 취급을 한다"고 개탄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술 더 떠 12월22일 국토해양부·행정안전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디지털정보화 시대에 묶이다 보면 빈부격차를 줄일 수도 없고 일자리를 만들 수도 없다"고 재차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요즘 IT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대부분 기가 꺾이고 풀이 죽어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확연해진 '평가절하'와 '홀대'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IT는 자동차·조선·철강·섬유·식품 등 전통산업에 융합시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기 위한 도구로 요약된다. IT산업은 '육성의 대상'에서 탈락했다. 과거 주연이었지만, 이제는 조연이다.

정부 조직개편 이후 정통부 관료들은 지경부·방통위·행안부·문화부 등으로 분산됐다. 하지만 그들은 현 소속 부처에서 전과 같은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IT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국가정보화를 추진하는 행안부의 경우 정보화전략실장이 정통부가 아닌 행자부 출신이다. 그 아래 국장들도 5명중 2명만 정통부 출신이다. 현 정부에서는 IT관료들부터가 '찬밥'이다.

IT산업은 거대한 생태계다. 그 꼭짓점에 통신사업자와 방송사, 포털 등이 있다. 그 밑에 장비업체, 부품소재업체, IT서비스업체, 솔루션업체 등이 포진해 있다. 소비자가 이를 둘러싸고 있다. 그림을 더 크게 그리면 IT기술이 접목되는 자동차 등 제조업이 있다. IT가 접목된 농업·서비스업도 IT생태계를 이룬다.

그러나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게 정부다. 정부는 IT산업을 육성하고 국가경영에 IT를 활용, 선진화시키는 역할을 맡아 왔다. 그 과정에서 IT산업에 가는 방향과 비전을 제시했다. 그 결과 산업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정보화선진국이 됐다. IT강국 코리아의 위상도 얻어졌다.

벤처 8년차인 한 소프트웨어업체 사장은 "지금 같은 사회분위기에선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어린이들도 꿈을 버릴 것이다. 취업이 안돼 벤처 창업하려던 젊은이들도 마음을 돌려먹을 것이다. IT사업 하는 사장들은 심각하게 전업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한다. 다분히 허무주의가 묻어난다. 그는 "정부가 꼭 그렇게 IT를 공개적으로 낙인 찍는 이유를 모르겠다. 융합산업이란 것도 IT원천기술이 강해야 경쟁력을 얻는다. 현대차가 지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것도 IT가 기여한 측면이 크다. 중요한 것은 IT의 강점을 계속 살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IT냐 전통산업이냐, IT냐 녹색산업이냐 양자택일할 성질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상경제정부'를 선언했다. IT를 접목시킨 첨단융합신산업을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전제로 현재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져 있는 IT기업인들의 사기를 살리는 것이 더욱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특별취재팀(이재권 논설실장, 강호성·권해주·이지은·정병묵기자)]
출저: 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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